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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03 대학 동기들과 남한산성에서 송년산행을 즐기다.
- 2016.05.24 남한산성(南漢山城) 성곽길을 걸으며 역사(歷史)와 함께하다.
오늘은 대학 동기 50여명과 함께 남한산성을 지하철 8호선 산성역부터 북문까지 7.11km의 거리를 3시간40분 동안 가볍게 걸어 보았다.
예전에 남한산성 성곽길은 3-4번 걸어보아서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으나,
산성역을 출발하여 남문과 서문을 경유하여 북문에서 산행을 종료하는 새로운 코스였다.
나는 번잡함을 싫어해서 삼삼오오 산행을 즐겨하는 편인데, 50여명의 대규모 인원과 함께하는 등산은 내 산행사에 오늘이 처음이지 싶다.
2-3일전에는 수은주가 곤두박질을 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돌돌 감싸고 집을 나섰는데,
오늘은 다행히 기온이 많이 올라가서 산행을 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그런데 산행을 시작하여 채 2km도 걷지를 않았는데 판을 펼치고 입산주를 시작한다.
아마도 오늘은 그 유명한 산삼주(입산주+정상주+하산주)를 몸소 체험하게 생겼다.
이윽고 성남 누비길 1구간을 따라서 1시간40분만에 남한산성의 남문인 지화문에 도착을 하였다.
남문에서 서문으로의 산행 루트도 조망이 좋은 성곽길로 걷는 줄 알았는데,
아주 편~안한 콘크리트 산책로를 통하여 수어장대 방향으로 올라가더라.
이런줄 미리 알았더라면 스틱과 아이젠을 모두 집에 두고 올 걸 그랬다.
남문을 조금 지나서 한적한 테이블이 보이자 아니나 다를까
배낭에서 다양한 술과 푸짐한 안주를 꺼내어 이제는 정상주 술판이 벌어진다.
수어장대를 조금 못 미친 곳에서 천지개벽을 한 위례신도시와 성남골프클럽을 내려다보니,
옛날 남성대 시절에 드라이브 거리도 많이 나가지 않는 놈이 공의 꼬리를 보겠다고
당시에는 수도권 최장거리의 드라이빙 레인지를 자주 찾았던 때가 피식하고 떠오른다.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동기들이 간식과 정상주를 즐기는 동안에 수어장대에도 오랜만에 다시 들러서 기웃거려 보았다.
이제는 소나무가 멋스러운 널찍한 산책로를 따라서 북문까지 여유롭게 걸어서 오늘의 남한산성 산행을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청수가'라는 식당에서 닭백숙과 닭볶음탕으로 걸쭉한 뒤풀이를 하였는데,
이 몸은 저녁에 분당에서 또다른 송년모임이 있어서 몸을 사렸지만,
다른 친구들은 술잔이 날아다니며 또다시 무지하게 마시더라. 참으로 대단들하다.
대학동기 산악회는 이제 두번째 참석이어서 아직은 많이 어색하지만,
35년전에 같은 학교에서 만났다는 인연 하나로 격의없이 대해준 친구들이 고마울 따름이며,
내년에는 함께하는 산행기회가 많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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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오전에는 남한산성 성곽길을 남문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동문, 북문, 서문을 경유하여 다시 남문까지 대략 8.5Km의 거리를 3시간반 가량 걸어 보았다.
요사이는 날씨가 미쳤는지 한여름처럼 무지하게 더워서, 오전중으로 산행을 끝마치기 위하여 아침 6시40분에 남한산성 남문주차장을 출발하였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국가 사적 57호로서 북한산성과 함께 도성을 지키던 남부의 산성이었다.
남한산성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나, 현재 모습의 성곽은 후금의 침입을 막고자 인조 2년에 축성되었다.
그러나 병자호란때에는 강화도가 함락되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삼전도로 나가 항복을 하였던 치욕의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예전에도 남한산성 성곽길을 3-4번 일주를 하였었는데,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성의 서남쪽 골짜기의 해발 370m 지점에 위치한 남문은 4대문중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문이다.
또한 남문은 정조 3년에 개축하여 지화문(至和門)으로 칭하였으며, 4대문중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는 문이다.
아침 시간이 일러서 인지 산책객들이 거의 없어서 너무나도 한적하고 새벽 공기가 무척이나 상쾌하다.
오늘은 혼자만의 산책이어서 예전에는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보았던 안내문도 꼼꼼하게 읽어 보았다.
옹성은 일반적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밖으로 또 한겹의 성벽을 둘러 쌓아 이중으로 쌓은 성벽을 말하나,
남한산성의 옹성은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3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하고, 요충지에 대한 거점을 확보하기 위하여 설치한 시설물이다.
예전에는 많이 훼손되어서 복원공사가 한창이었던 남문에서 동문 방향으로 내리막 구간의 성곽도 말끔하게 보수가 되어 있었다.
동문은 산성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문과 함께 가장 사용빈도가 높았던 성문 중의 하나이다.
동문을 좌익문(左翼門)이라 한 것은 국왕은 남면(南面)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므로 동쪽이 왼쪽이 되기 때문이다.
남한산성 성곽은 기본적으로 원성(原城)과 외성(外城)으로 구분된다.
원성은 인조 2년에 수축한 남한산성의 영역으로서 하나의 폐곡선으로 연결될 수 있는 본성(本城)을 의미한다.
그리고 외성으로는 동쪽에 봉암성과 한봉성이 있고, 남쪽에 신남성이 있는데 이곳에는 동·서 두 개의 돈대가 구축되어 있다.
장대(將臺)는 전투시 지휘가 용이한 지점에 축조한 장수의 지휘소인데, 성내의 지형중 가장 높고 지휘와 관측이 용이한 곳에 설치하였다.
남한산성에는 동, 서, 남, 북 각 방면에 각각 하나씩 4개의 장대와 봉암성에 외동장대를 설치하여 모두 5개의 장대가 있었다.
그 중에서 서장대인 수어장대만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여장(女墻)은 성위에 설치하는 구조물로 적의 화살이나 총알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낮게 쌓은 담장을 말한다.
남한산성 여장의 경우 급경사의 일부지역에서는 경사면의 중간에 단을 두어 계단과 같이 축조하였으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단을 두지 않고 바닥의 경사면과 평행하게 여장을 설치하였다.
선조(宣祖) 때의 기록을 보아 남한산성 북문은 인조 2년에 신축된 성문이라고 생각된다.
그 후 정조 3년에 성곽을 개보수할 때 개축하고 이름을 붙여 전승문(戰勝門)이라 칭하였다.
'전승문' 이란 싸움에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한다는 뜻인데 현재 편액은 걸려있지 않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의 서쪽 주봉인 청량산 정상부에 세워져 있으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내에 현존하는 건물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며, 2층 누각과 건물의 왼쪽에 2동의 사당인 청량당으로 이루어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가 되어 있는 남한산성은 성곽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문화재가 산재되어 있어서,
반나절을 운동 삼아서 성곽길을 따라 걸으면서 역사와 함께 호흡을 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장소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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